몇 달 전에 대하소설 토지 한 질을 사놓고 읽기 시작한 지는 이제 2주일.
여성 특유의 문체로 당시의 풍습과 생활상에 대한 묘사 등은 마치 사극을 보는 듯 생생하게 그려지나
TV사극으로써는 결코 세세하게 전할 수 없는, 독자로 하여금 낱말 하나하나를 짚어 읽어야 할 만큼 생경하면서도
그렇기에 더더욱 사료로서의 가치가 뛰어난 섬세한 필력에 감탄해 마지 않았다.
속도감있는 극 전개는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역사적 사건과 인물의 새로운 면면을 알게되어 기쁘다.
많은 등장인물 개개인의 성격과 행동양식 하나까지 꿰뚫어 보는 안목이 탁월하여
그들이 책 속에서 뚜벅뚜벅 걸어나와 당장 맞닥뜨린대도, 복색만 현대적으로 갖췄다면 전혀 어색함이 없을 것 같다.
참, 책 이야기하려던 것은 아니다.
짬짬이지만 한참 재밌게 읽어내려가는데 1부 4권 중간쯤에 갑자기 빈 공간을 맞닥뜨렸다.
어라, 이게 뭐야? 두 페이지가 온데간데없다. 펼친 면 양쪽이 여백의 미 정도가 아니라 활자가 전혀 없다.
그 옛날 만화방에서 가끔 누군가의 애착으로 절정 부분이 찢겨 나간 만화책을 보다, 우습지만 비분강개한 적이 있었고
어쩌다 책장 몇이 붙어 있는 책을 만나기는 했으나,
문맥의 흐름으로 보아도 이처럼 두 페이지가 희멀겋게 맹탕인 것은 또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아쉬우나마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나는 이 황당한 사태로 책을 어떻게 교환해야 할지는 나중에 생각기로 하고
빈 두 페이지 이후를 급하게 읽어내려 가는데, 두 페이지 읽고 나니 또 다시 두 페이지가 공백이다.
아~ 이런 이런. 얼른 몇 페이지를 넘겨보니 이후에도 두 번 더 그런 공백이 존재했다.
1부 4권의 p210-211, p214-215, p218-219, p222-223가 공백이다.
나남출판 2009년 1월 5일 19쇄 판에 이런 문제가 있나 보다. 검색을 해봐도 이런 문제점에 대해 찾을 수 없었다.
이제 읽기를 계속할 수 없다. 가까운 서점에서 교환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인터넷으로 산 것이라 어찌 될는지 모르겠다.
짬짬이 읽긴 했어도 술술 읽힐 때 진도를 나가야 하는데 이런 이유로 읽기를 중단하는 것은 무척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제까지 읽어야만 하는 이유는 없고 다만, 독자로서의 궁금함 때문에.
하지만, 아직도 이 이야기가 열일곱 권이나 남아있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참 행복한 일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조금 더뎌진다 한들 어떠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