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理想)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生)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
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나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 전태일의 1970년 8월 9일 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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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로부터 석 달 뒤인 1970년 11월 13일,
자신의 몸을 활활 태우는 불길 속에서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라고 거침없이 소리치며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라고 주위에 거듭 거듭 당부하며
고통스럽게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결단으로 죽어갔다.
요즘 오래전에 방영한 EBS '지금은 마로니에'를 보다 보니, 60~70년대를 생각하게 되고
그 1970년의 큰 사건 중 하나가 김지하의 불후의 명작 '오적' 詩였고 다른 하나는 전태일의 분신이었다.
자신은 재단사였으면서도 열악한 환경에 핍박받고
폐병 들어 돈 한 푼 못 받고 쫓겨나는 어린 소녀 노동자들의 처지 개선을 위해
꽃다운 스물두 살 한목숨을 던지리라 결심하기까지, 넉 달이 채 안 걸렸다.
세상에 그 어떤 고민이 이 보다 오랜 방황을 필요하랴.
그 역시 돌봐야 할 노모와 동생들이 있고 이십 대의 창연한 꿈이 있었을 터인데
다름 아닌 자신이 돌보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 어린 노동자들을 위해
한목숨 초개와 같이 불사를 결심하기 까지 고민한 시간이 석 달여.
노조를 결성한 죄로 평화시장에 쫓겨난 후, 재단사로 재취직이 어려워서 그는 산에 들어가
돌을 캐는 막일을 하며 생각하고 또 생각한 이 궁극의 이타심은
마침내, 확고부동한 결단을 내렸고 행동으로 옮기기에 주저함이 없었던 것이다.
돌 캐던 산에서 자신의 관 자리를 파서 들어가 누워보던 장면을 보노라면 가슴이 마구 고동친다.
'전태일 평전'을 통해 그것이 그의 일기를 기반으로 한 까닭에 좀 더 인간적인 그의 진일 면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과거에 대한 이해 없이 온전한 현실비판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 좋은 참고자료가 되고 있는 '지금도 마로니에는'를 보다 무심히 책장에서 빛바랜 전태일 평전을 꺼내 들었었다.
그리고 책장을 펼쳤더니 위의 부분이 다시 날아와 가슴에 박히는 것이다. 처음 봤을 때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오늘이 바로, 그가 결심한 바로 그날이었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긍휼한 마음, 그리고 결단과 실행을 이제껏 본 적이 없다.
몇 백 년 몇 천 년 전의 신격화된 우상에서 답을 찾으려 할 거 없다.
알려고만 하면 이처럼 바로 가까이에 닿을 듯 가까이에 바로 엊그제 같은 기억들 속에
아직, 그가 살아 숨 쉬고 소리치고 있으니 말이다.
'그 사람의 말이 곧 그 사람은 아니요 그 사람의 행동이 곧 그 사람이다.'
좌우명으로 삼을 만하다. 오래전에 어디선가 보거나 듣고 좋아한 글귀,
나약한 자신의 모습을 볼 때마다 스스로를 경계하게끔 만드는 글귀.
이 글을 쓰면서 원전을 찾아보려 했으나 찾지 못했다.